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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아버지께서 근무하던 시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." 남부지방산림청 영주국유림관리소 현동팀장으로 일하는 이상을(52.임업주사.경북 영주시) 씨는 아버지(이관우.2000년 작고)에 이어 2대째 나무를 지키고 있다. 사무실이 있는 경북 봉화군 소천면 현동리는 이 팀장의 고향이기도 하다. 군 복무를 마치고 1980년 11월에 산림청 공무원이 됐으니까 어느 새 2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. 당시 아버지 또한 산림청 공무원으로 일하고 계셨기 때문에 산림청에서는 거의유일한 부자 공무원이었다. 이 팀장의 아버지 이관우 옹은 1981년에 제 1회 청백리상을 받을 만큼 청렴한 공직자였다. 조선시대 청백리인 백사(白沙) 이항복(李恒福.1556~1618)의 13대손이었으니 청백리상 수상이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. 아버지께서는 한국전쟁 직후 20대의 젊은 나이에 산림청에 발을 디딘 후 강원도 인제군을 시작으로 지리산 일대와 경북 북부지역 등 전국을 돌며 나무를 가꾸고 지키는 일에 생을 바쳤다. 1950~60년대 당시 특히 지리산에서는 나무를 베어 훔쳐가는 도벌꾼들이 산림청 공무원들을 붙잡아 나무에 묶어 놓고 위협하는 등 그야말로 생과 사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일상의 연속이었다.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목숨 못지 않게 나무의 목숨이 소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순찰을 돌면서 꿋꿋하게 이겨나갔다.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이 팀장은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. 아버지께서 신혼 때부터 고향인 봉화를 떠나 강원도 인제에서 혼자 지내셨던 것처럼 이 팀장 또한 50이 넘은 나이에 경북 영양에서 자취를 해 가며 산을 지켰다. 재선충이나 솔잎혹파리 때문에 소나무가 말라 죽어가고 산불 때문에 울창한 숲이 타들어 갈 때마다 마치 혈육을 잃는 듯한 아픔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은 이루 다 셀 수가 없다. 그 모든 일은 사랑하는 아내(48)와 자식들이 남편과 아버지를 잘 이해해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. 나무를 가꾸듯 소중히 키워 낸 1남 1녀의 자식들을 아직 출가시키지 못했지만 이 팀장은 5년 뒤에 정년을 맞는다. 아마도 1985년에 퇴임하셨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6급 임업주사로서 산림공무원의 소명을 다하게 될 것 같다는 이 팀장은 훗날 세상을 떠나면 고향 마을 뒷산의 이름없는 나무 아래 묻힌 뒤 나무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조용히 전해주었다. "찾는 이 없는 깊은 산중에 서 있으면서도 아무 불평이 없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욕심을 부리지 말고 살아라." 살아 생전 아버지께서 일러 주셨다는 말씀을 전하는 이 팀장의 모습은 어느 새 나무를 닮아 있었다. [연합뉴스]